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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선박 한선 (민계식, 이강복, 이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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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작가소개목차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으로 인하여 경제적으로나 국방상으로나 바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바다를 잘 통제하였을 때는 나라가 온전하였고 해양 진출시기에는 국운이 융성하였다.
삼국시대의 고구려를 볼 때 수군水軍이 강했을 때는 수당의 바다로부터의 침입을 잘 막아낼 수 있었다. 발해와 신라의 남북조시대(흔히 통일신라시대라고 함)때 장보고의 해상활동으로 인한 국운의 융성에 대해서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바이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 태조는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개경開京(오늘날의 개성)의 부유한 상인 집안 출신이므로 무신란武臣亂이나 몽고의 침입이 있기 전까지의 고려에서는 자연히 해상무역이 활발하여 고려의 무역선이 멀리 아라비아 중동지역까지 진출하였고 인구 70만 명에 이른 국제도시 개경에는 고래 등 같은 기와지붕이 처마를 이었으며 동남아나 아라비아에서 온 상인들이 거리에서 목청을 높였었다고 한다. 또한 ‘Korea’라고 하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영어 국명이 그때 생겼다고 한다.
몽고의 침입시기에는 여러 가지 국가적 활동이 침체된 시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비록 외적의 침입으로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였을지라도 인류의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의 축조와 같은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대 문화大 文化 활동이 있었고 특히 우리나라 조선사造船史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음에 틀림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몽고인들은 역사적으로 내륙사막 민족이라 물을 잘 모르고 바다를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몽고군이 오면 배 위에서 며칠씩 지낼 수 있는 식량과 물을 싣고 온 가족이 배를 타고 바다로 피신을 하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빤히 보이는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어도 몽고군은 육지에서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퍼붓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였을 것이다. 몽고군이 물러나면 상륙해서 지내다가 몽고군이 오면 다시 바다로 피신하고 마치 숨바꼭질 하는 것과 같은 경우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전국 각 지역에서는 많은 배를 건조하여 보유하느라고 선박을 튼튼하고 빨리 건조하는 기술이 크게 발달하였다. 또한 몽고군이 물러갈 때까지 해상에서 며칠씩 지내야 하니까 선박의 안정성(stability)이 매우 중요한 사항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서해안의 넓은 갯벌과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자연 환경으로 인하여 예전부터 우리 전통선박들은 바닥이 약간 편평한 평저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몽고의 침입시기에 안정성을 크게 향상시키기 위하여 더 넓은 평저선의 형태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따라서 몽고침입 이후 고려시대의 선박은 당시 세계 어느 나라의 선박보다도 안정성이 우수하였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선박 건조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로 계승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아도 거북선(귀선龜船)을 개발하는데 바닥이 뾰족한 형태로 하느냐 아니면 편평한 형태로 하느냐에 대해서 깊은 논의를 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결국 편평한 형태를 채택한 바 있다.
조선시대 초기 태종 때에는 고려시대의 과선戈船과 별맹선을 개량한 맹선猛船으로부터 거북선(귀선龜船)을 건조하였고 대마도 정벌 때 사용하였다고 하나 당시 소규모 전투선(승선인원 60∼80명)으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영호남으로부터 서울인 한성漢成과 그 북쪽지역에 곡물을 운반해야 하는 필요성에 의하여 조운선漕運船이 발달하였으며 임란당시의 주력 전투선인 판옥선板屋船으로 발전하였다. 판옥선은 승선인원 180∼220명의 대형 전투선으로 일본의 주력 전투선인 안택선安宅船(아다케부네)에 비하여 구조적으로나 안정성 면에서 우수하였으므로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
거북선(귀선龜船)은 판옥선에 덮개를 씌운 것으로서 지휘선이 아닌 돌격선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되며 심리적으로는 물론 실제 전투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국정이 안정되었던 태종, 세종조를 지나 중기, 후기로 갈수록 수세적, 소극적 해양 정책으로 결국 왜란을 초래하게 되었고 1910년 드디어 나라를 잃는 수모와 치욕을 당하게 되었다.
1945년 광복이 되었으나 곧이어 민족상잔의 6:25 전쟁이 일어났고 나라는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악착같고 끈질긴 노력으로 이제는 세계 9위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였으며 다시 세계 제일의 조선해양 산업국이 되었다. 이러한 단기간 내의 경제 발전은 세계 경제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기적’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 중에서 압도적으로 세계 제일을 유지하는 산업은 조선해양 산업 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제일의 조선해양 산업 강국이 된 것은 지금까지의 역사적 고찰로 보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해상활동을 활발히 한 세계 각국에는 대부분 고유의 해양박물관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역사상 해양강국으로 자랑스러워할 만 한 시기가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어느 곳에도 체계적이고 규모 있는 해양박물관이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해양박물관 건립에 대해서 오늘날 우리나라 조선해양산업의 발상지이며 성지聖地 라고 할 수 있는 울산시를 비롯하여 정부의 관련 부처에 여러 번 제안하고 건의 하였었으나 여의치 못하였다.
궁여지책으로 저자가 현대중공업(주) 선박해양연구소 책임자로 있을 때인 1990년대 초에 우리나라의 전통선박 ‘한선韓船’에 대해서 할 수 있는 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 중에서 시대적으로 대표적인 선박을 선정하여 1년에 한 척, 또는 두 척씩 이라도 모형선으로 복원함으로써 소규모 해양박물관을 준비하고자 하는 장기계획을 세운 바 있다.
그 동안 수없이 많은 기록을 조사하여 왔다. 이 사업은 초기에 10년의 계획으로 시작하였으나 벌써 그 두 배인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책은 이러한 배경을 갖는 저자의 오랜 꿈의 결실이다.
아직 수정 보완할 사항이 많이 있으나 완벽한 결과를 준비하다가는 언제 결실을 볼 수 있을지 몰라 우선 그 동안 준비된 것을 정리하여 출간하게 되었다.
관심 있는 독자 여러분의 많은 충언과 지도편달을 바라는 바이다.

2012년 봄
울산에서, 민계식


한국 전통선박 한선韓船의 복원 연구는 현대중공업주식회사 선박해양연구소와 원인고대선박연구소의 공동 작업으로 진행되었으며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전통선박에 대한 체계적 조사 복원을 목적으로 1997년부터 수행하여 왔다.본 복원연구에서는 상고시대부터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서 각 시대별로 사용하였던 선박을 조사하고 대표적인 전통선박을 선정하여 복원연구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제까지 전통선이 발굴될 때마다 단편적으로 조사하여 발표된 자료를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역사적 근거를 수집 정리하므로서 이를 토대로 우리의 전통선박이 갖고 있는 특성과 구조를 재현하는데 주력하였다.

 

한국 전통선박 韓船 머리말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해상활동과 그 수단이 되었던 한선韓船에 대하여 사실과 다르게 곡해된 면이 없지 않았다. 백제의 사신선, 장보고의 교관선, 고려의 전선, 고려의 원양무역선 그리고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한 귀선(거북배), 판옥선, 조선 후기에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선 등을 보아도 한선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해양문화 유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전통 선박인 한선韓船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였기에, 본 연구에서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자료와 그간에 추가로 발굴된 역사적 자료 및 사료들을 심층 분석하여 얻어진 내용들을 정리하였으며, 따라서 최근에 와서야 그 구조가 밝혀지고 역사의 체계도 대략적으로 정립하였다. 본 도서 발간을 통하여 한선에 대한 역사와 구조를 체계적으로 알기 쉽게 기술하려고 노력하였다. 미력이나마 우리 문물의 일단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늦게나마 세계 최대의 대형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주식회사에서 조상들의 훌륭한 해양 문화유산인 우리 고유의 전통 선박에 관심을 갖고 조사연구를 계속하고 고증을 통하여 전통선박을 복원하였다. 이들 복원선을 통해서 우리 조상의 우수한 조선기술과 아름다운 해양문화유산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조상의 우수한 조선기술의 바탕위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제일의 조선강국이 되었음을 배움의 길에 있는 젊은이나 조선 해운관계자는 물론 해외의 유수 선주들이나 국내의 조선소를 방문하는 세계만방의 여러 내방객들에게 널리 알리게 될 것을 크게 기대하는 바이다.